“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한복음 4:13~14).

 

   창조세계의 장소 가운데 바다, 호숫가, 강변은 종종 평화와 신성한 느낌을 주는 공간이다. 하지만 폭풍우, 오염, 홍수는 물속에서 발견되는 혼돈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는 살면서 물을 불안이나 두려움의 근원으로 경험한다. 그러면서 때로는 하나님의 임재를 구하는 거룩한 수단으로 물을 사용하기도 한다. 공유지 가운데 물만큼 다양하고도 폭넓게 상징적으로 사용되는 것은 별로 없다.

   산업화된 사회에서 사람들은 수도꼭지만 돌리면 깨끗한 식수를 마실 수 있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그러나 아직도 수억 명 이상은 깨끗하고 안전한 물을 즉각적으로 공급받지 못하고 있으며, 매년 수백만 명이 오염된 물을 통한 질병으로 사망하고 있다. 깨끗한 물을 구하기 위해 가난한 나라의 많은 사람들이 시간과 에너지, 자원을 소모하고 있다. 어린이와 여성들은 학교에 가거나 지역사회에 참여하는 대신 물을 구하고 운반하는 데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한다. 기업가들은 이미 제한된 물 공급을 민영화할 방법을 모색하면서 개발도상국에서 물을 사업의 자원으로 사용하고 있다.

   물은 생태계에서 광범위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중요할 뿐만 아니라 성서에서도 다양한 상징의 매개로 자주 사용되었다. 모든 종교 전통이 공유하는 보편적인 상징인 물은 생명의 성장과 보존에 필수적인 요소이다. 대부분의 생명체가 물에 접근하기 쉬운 곳에 서식하기 때문에 고대부터 사람들은 물을 생명 그 자체의 징표이자 상징으로 여겼다. 그러나 물은 폭풍우나 홍수처럼 생명을 위협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성서에서 창조는 혼돈의 물에서 시작되었고(창 1:2), 출애굽 사건에서 물은 구원과 파괴의 매개체 역할을 동시에 수행했다. 노아의 홍수는 멸망의 수단이었지만 그 결과 무지개에서 약속된 언약은 모든 사람에게 생명의 표징이 되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방황하는 동안 물은 갈등의 원인이 되었다. 혼돈, 부활, 새 생명을 상징하는 물의 이미지는 복음서 곳곳에 퍼져 있다. 예수님은 물에서 세례를 받으셨고, 물 위를 걸어가셨으며, 물을 포도주로 바꾸셨다. 신약성서의 이러한 내용은 구약성서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전해진 물과 관련된 이야기와 경험에 기반을 두고 있다. 성서 전체에서 물의 이미지는 창조, 충돌, 구원, 회개, 거부, 초대, 치유, 찬양 등의 내용과 관련이 있다.

 

   물의 이미지는 요한복음에 특히 자주 등장하며 다른 어떤 상징보다 가장 다양한 연관성을 지닌다. 예를 들어 물, 물 항아리, 강, 우물, 샘, 바다, 연못, 대야, 갈증, 음료 등에 대한 여러 대화가 등장한다. 이들과 연결된 문맥과 이야기들은 다양한 구절에서 물의 상징적 가치를 설명한다. 요한복음에서 물은 주요 주제의 동기가 되면서 핵심적인 상징으로 사용되었지만, 빛이나 떡 등에 비해 통일성이 떨어지고 가변성이 더 크기 때문에 지금까지 해석을 위한 많은 연구가 진행되었다.

   요한복음 4장에는 예수께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 물과 관련하여 중요한 말씀을 하시고, 그것을 영생과 연관 지어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는 장면이 나온다. 10절에서 예수께서는 여인에게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대답하시며 자연스럽게 여인의 관심을 생수로 향하도록 이끌어 가신다. 그리고 한층 더 깊은 내용으로 들어가 조상 야곱에 의해 공급된 물과 그리스도로 인한 영생의 물 사이의 질적인 차이를 다음과 같이 대조적으로 표현한다.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이 말씀에 충격을 받은 사마리아 여인은 자신의 약점을 노출하고 메시아에 대한 갈망을 확인하게 되며, 결국 예수님을 세상의 구주로 인정하게 된다(42절).

   이 대화는 예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구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예수님이 그리스도로서의 신분을 나타내시는 것으로 끝난다. 생수는 세상의 모든 그리스도인이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14절)이라고 생각하는 진정한 생명의 원천을 표현하는 데 특히 적절한 용어이다. 음식과 물은 생명의 필수품이며 초자연적인 생명의 자연스러운 상징이다. 물은 생명체가 지속적으로 필요로 하는 것이다. 물과 음식에 대한 필요성은 동시에 인간의 생명에 대한 소망을 가리키기도 한다. 구약성서에서 생수는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넣는 에너지에 대한 은유였지만(에스겔 47:9; 스가랴 14:8; 예레미야 2:13), 랍비 문헌에서는 토라와 성령에 대한 은유로 종종 사용되었다. 생수는 영생에 이르게 하는 샘물처럼 마르지 않는 물을 주시는 그리스도와 생명력을 연결하는 것으로, 사람들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성령의 선물이다.

 

   요한복음의 21장 가운데 적어도 절반 이상이 물의 이미지를 다루고 있다. 요한이 물에 대해 언급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예수를 메시아로 인식하는 경우에 나타난 물(1:26, 31, 33; 21:1), 거듭남을 표현하는 물(3:5, 23; 19:34), 기쁨의 물(2:1~11), 생명의 물(4:14; 7:37~39), 치유의 물(5:1~15; 9:6~7), 그리고 격렬한 활동으로 두려움을 주는 물(6:16~21) 등이 있다.

   세례자 요한의 물 세례는 성령 세례와 대조된다. 요한복음에서 물은 성령을 상징하기도 하면서 때로는 성령과 대조적으로 사용되었다. 예수님이 처음 공개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곳은 세례자 요한이 세례를 베푼 물속이었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자마자 성령이 강림하여 예수님 위에 머물렀다. 이를 통해 세례자 요한은 예수가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었다. 따라서 물은 요한의 물 세례와 예수님의 성령 세례를 대조하고 예수님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두 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다.

 

   요한복음 21장에는 디베랴 호수에서 베드로를 비롯한 일곱 명의 제자들이 자신들의 직업인 고기잡이에 종사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들은 밤새도록 고기를 잡았지만, 아무것도 잡지 못했다. 동틀 무렵이 되자 그들은 실망한 채 해안에 도착했다. 갑자기 어떤 사람이 나타나서 그들에게 식사를 위해 물고기를 달라고 요청했다. 그들은 물고기를 하나도 잡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낯선 사람의 제안에 따라 배 오른쪽에 그물을 내렸더니 그물을 배 안으로 끌어들이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많은 고기가 잡혔다. 제자들이 아무런 수확 없이 수고했던 물은 낯선 사람의 말 한마디에 갑자기 물고기가 풍성한 곳으로 변한다. 물은 빈곤과 풍요가 공존하는 곳임을 드러내면서,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도록 돕는다.

   니고데모와 나눈 요한복음 3장의 대화에서 예수께서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수단으로 물과 성령에 의한 거듭남에 대해 말씀하셨다. 성령을 통한 중생은 마지막 때를 위해 약속된 것이며 성령은 물로 상징된다. 여기에서 물과 성령의 결합은 유대인의 종말론적 희망(에스겔 36:25~27)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으며, 요한복음에서 땅의 존재와 하늘의 존재 사이의 은유적인 대비로 표현된 것이다. 물의 이미지는 예수님이 가져오는 구원을 상징하는 것으로 반복적으로 등장한다(4:7~42; 7:37~39; 13:1~11).

   창에 찔리셨을 때 예수님의 몸에서 피와 물이 흐르는 것(19:34)과 물과 피와 성령의 증거로 오신 예수님(요한일서 5:6~7)에 대한 내용은 예수님의 육체적 죽음에 대한 진실성과 세례와 성만찬에 대한 연관성을 묵상하게 하는 성서의 본문이다. 신약학자 찰스 다드(Charles H. Dodd)는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피와 물이 흐르는 것을 “십자가에 못 박히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에게서 흘러나오는 생명의 표징”으로 보았다.

 

   요한복음은 수많은 물의 이야기와 상징을 통해 우리에게 생명과 구원의 길을 보여준다. 20장 31절에서 요약한 것처럼 창조 신앙의 다양성을 활용한 요한의 풍부한 내러티브는 우리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할 뿐만 아니라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는 분명한 목적을 지니고 있다. 마치 물이 변해 포도주가 되듯이, 아무리 많은 물을 마셔도 다시 목마르게 될 유한하고 연약한 우리에게 다시는 목마르지 않을 그리스도의 보혈인 생수를 주시는 참사랑의 샘물을 발견하도록 우리를 일상의 기적으로 인도한다.


박용범은 호남신대 신학과 교수로 교회와 학교 현장에서 창조세계의 다양성을 보존하고, 위기에 처한 생태계 회복을 위해 종교와 과학을 통합적으로 적용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전공(서울대 생물교육학)을 살려 『기독교 사회생태윤리』(새물결플러스)를 저술, 사회정의와 생태정의를 신학적 관점에서 추구하는 학문분야를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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