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마당을 나서는데 봄기운이 가득하다. 따뜻한 햇볕과 바람이 내 온몸을 살포시 감싸안는다. 부드러운 바람은 오랜 겨울을 지나며 잊고 있었던 몸의 감각을 깨우고 따사로운 햇볕이 주는 포근함은 얼마나 감미로운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다. 사랑할 때 나온다는 호르몬 옥시토신이 과다 분출되는 느낌이다. 환희와 감동 그 자체. 마음속에서 정말 좋다, 행복하다는 느낌이 물밀듯 밀려온다.

   옥시토신은 사랑과 유대, 신뢰와 관용, 안정감과 평정심 등을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는데 과연 자연 속에는 배려 깊은 따뜻한 사랑의 기운이 가득하다. 그것은 천상에 속한 느낌이다. 나의 에고(ego)를 거침없이 무장 해제시키고 모든 것을 허용하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바로 이것이야말로 자연이 가진 치유의 메커니즘(mechanism)이 아닐까? 그래서 병원에서도 포기한 아픈 사람들이 결국 돌아가는 곳이 자연인가 보다. 서울에서 몸과 마음이 지쳐 찢어진 포대 자루 같았던 나를 온전히 회복시킨 곳. 자연에는 자극이 없다. 오직 영감(inspiration)만이 있을 뿐이다.

 

“인간 의식의 상승은 마음의 가벼움과 몸의 부드러움, 그리고 고요함에서 출발한다. … 의식을 다루는 데 있어 내가 얼마나 무의식적으로 긴장하고 있으며, 불필요한 힘을 주면서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는지를 알아차리고 이완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그 어떤 것에도 걸림이 없는 가벼움과 부드러움이야말로 에고의 사슬이 끊어지기 시작한 증거이며, 삶의 생동감을 회복해 가는 과정이다. 그것은 저질화되고 냉랭하게 얼어붙은 에너지가 풀어지면서 내가 나에게로 돌아가는 여정을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몸의 심리학』에 나오는 대목이다. 거대 도시 서울에 살 때 나는 얼마나 극심한 소음 속에 살고 있었는지 깨닫지 못했다. 그리고 쉴 수 없는 삶의 구조는 나를 늘 긴장하고 과로하게 만들었다. 자연으로의 회귀는 결국 물질문명에서 돌아서서 내가 영적으로 새롭게 깨어나는 출로가 되었다. 그러고 보면 내가 포기한 것도, 잃은 것도 없다. 오히려 하나님의 창조적 영이 가득한 자연 속에서 내 몸과 마음은 온전히 이완되었다. 사랑의 호르몬 옥시토신은 기도할 때도 분비된다. 이번 사순절 기간 고요 속 깊은 침묵기도를 통해 정금같이 단련되어 바라건대 부활의 날 아침, 따뜻한 봄 햇살 같은 사람이고 싶다. 


혜윰 김진희는 20년째, 충남 예산 깡시골에 살면서 안골교회를 섬기고 있다. 5년 전 두 번째 뇌출혈로 걷지 못하 는 남편을 돌보면서 한 사람이 가지는 특수성이 곧 인류라는 보편성으로의 확대를 경험한다. 기후위기 시대 환경 회복을 고민하며, 시골교회는 지역사회의 영적 센터인 동시에 대도시에 사는 현대인들에게 치유와 회복의 장이 될 것이라는 소망과 비전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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