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함께 걷는 길

◇ © 《어쩌다 활동가》 스틸 컷
◇ © 《어쩌다 활동가》 스틸 컷

 

   올해는 세월호 10주기이다. 참사 10주기를 앞두고 유가족들은 “다시 전국에 노란리본 물결 만들어달라”라는 요청을 하고 있다. 세월호 리본을 달고 다니던 청년이 이태원 참사의 희생자가 되어 전 국민을 비통하게 만들기도 했다. 이제 세월호는 안전사회를 바라는 이들에게 잊을 수 없는 상징이 되었다. 박마리솔 감독의 《어쩌다 활동가》는 세월호에 대한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세월호 얘기로 시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 영화의 주인공 이윤정 씨 때문이다.

   감독의 엄마 윤정 씨는 30년 넘는 세월 동안 교회와 집을 오가며 독실한 교회 집사님으로 살아온 사람이다. 하지만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더 이상 교회를 다니지 않는다. 대신 윤정 씨는 일산의 어느 이주민 인권단체 사무실을 다닌다. 긴 시간 동안 전업주부로만 살아왔던 윤정 씨는 생전 처음 해보는 컴퓨터 작업과 각종 사무 일, 그리고 외국인 응대에 어려움을 느끼면서도 최선을 다한다. 한국이 낯선 지역 사회의 이주민들과 구금된 강제 출국 대상자들을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윤정 씨의 진심이 통했는지 윤정 씨는 같이 일하는 사람 중에서도 가장 많이 전화를 받는 사람이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2020년부터 시작된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외국인 보호소에 구금되는 외국인 숫자는 늘어만 가고, 윤정 씨의 휴대폰은 더 바빠진다.

 

◇ © 《어쩌다 활동가》 스틸 컷
◇ © 《어쩌다 활동가》 스틸 컷

 

   엄마의 변화가 신기해 카메라를 들었던 딸 마리솔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들에 애쓰는 윤정 씨가 안쓰럽고 가끔 무례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사람들의 태도에 화가 난다. 그런데 카메라 뒤에서 윤정 씨를 찍기만 하던 마리솔 감독이 엄마를 돕기 시작하면서 영화도, 관계도 흥미로워진다. 마리솔 감독은 난민인정을 받기 위해 소송을 벌이는 동년배 Y를 엄마 윤정 씨와 함께 돕지만, 고등법원에서 패소하고 만다. 패소 소식을 전하던 마리솔 감독은 “나랑 같은 세대고, 내가 아는 가수도 그 친구가 알고, 뭔가 나랑 너무 지구 반대편에서 다른 삶을 살았지만 어쨌든 같은 시간을 살아왔잖아요”라며 눈물을 쏟는다. 몰랐던 세상을 엄마 윤정 씨를 통해 알게 된 감독이 “내가 본 세상을 카메라 렌즈가 아닌 내 두 눈으로 똑바로 보고 싶다”라고 선언하며 시위에 동참하는 모습은 뭉클한 감동을 준다. 윤정 씨와 마리솔 감독은 그렇게 나란히 함께 걷는 관계가 된다.

   가능하면 정보 없이 영화를 보는 편이다. 그래서 처음엔 그냥 인권운동가 엄마의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영화가 전개될수록 점점 윤정 씨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난다. 박마리솔 감독이 화가 난 이유는 윤정 씨의 눈에는 엄마 윤정 씨와 이주민들이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가 아닌 ‘기브(give)’만 하는 관계로 비쳤기 때문이다. 촘촘하게 찍은 촬영본 덕분에 관객들 또한 그 상황을 지켜볼 수 있다. 가족끼리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시간에 보호소에 있는 외국인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온다. 윤정 씨가 열심히 듣다가 서툰 영어로 그건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자 상대방은 알았다고 뚝 끊어버린다. 너무한다고 불평하는 딸에게 윤정 씨는 “답답하고 화가 나서 그런 거다”라며 오히려 상대방을 두둔한다. 딸의 눈에는 ‘기브(give)’만 하는 관계로 비치지만, 윤정 씨는 전혀 개의치 않는 것이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헌신적일까? 저 사람의 동력은 무엇일까? 이런 물음이 자연스럽게 생기는 모습이다.

 

◇ © 《어쩌다 활동가》 스틸 컷
◇ © 《어쩌다 활동가》 스틸 컷

 

   윤정 씨에 대한 이러한 궁금함은 나중에 풀린다. 마리솔 감독이 몰래 들여다본 SNS에 윤정 씨가 고백하고 있다. 한 번도 교회 바깥에 있는 자신을 상상해 본 적이 없다고. 하지만 세월호 사건에 보인 교회의 태도에 윤정 씨는 상처를 받고 교회를 떠난 것이다. 나 또한 세월호 사건 직후에 관련 영상활동을 하면서 교회로부터 상처받은 유가족들의 눈물을 종종 목격하곤 했다. 피해 당사자는 아니지만, 당사자만큼이나 공감하고 슬퍼하던 윤정 씨에게 교회는 참을 수 없는 곳이 되고 만 것이다. 윤정 씨의 모습에 마음이 많이 갔던 이유는 그녀가 교회는 떠났을지라도 계속 크리스천으로 살아갔기 때문이었다. 이주민들을 돕기 위해 밤낮없이 헌신적으로 일을 하는 윤정 씨의 모습에 대해 감독은 “달걀이 아닌 메추리알로 바위 치기” 같다고 말한다. 승률이 낮아 어떠한 변호사도 사건을 맡지 않으려 하자 법전을 뒤져가며 재판에 참여하는 윤정 씨의 모습에 딱 맞는 표현이다. 그리고 결국 그 모습이 지켜만 보던 마리솔 감독을 변화시킨 것이다. 교회를 떠났어도 ‘네 이웃을 사랑하라’라는 말씀을 실천하고 있는 윤정 씨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리고 윤정 씨를 관찰하다가 서서히 변화해가는 마리솔 감독의 모습에 어느 순간 지지를 보내게 된다. 같은 크리스천으로서 윤정 씨의 모습이 반갑고 고마웠다. 세월호 10주기를 맞아 교회에서 함께 보고 이야기 나눠봤으면 좋겠다.

 

문의 02) 757-0999 / 인디그라운드


류미례는 해남에서 태어났고 「월간 민족예술」 기자로 일하다가 1997년부터 다큐공동체 푸른영상에서 일하고 있다. 2000년에 발달장애인이 주인공인 첫 영화를 만들었고 시사회 날 결혼식도 했다. 이후 출산과 육아를 거치며 여성, 돌봄에 대한 영화 《엄마…》, 《아이들》을 만들었다. 현재는 소수민족 출신의 미얀마 난민과 청년이 되어가는 《아이들》의 주인공들을 찍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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